[경제구조] 창조경제와 실리콘밸리의 차이점
Journalist : changjo | Date : 15/07/24 7:25 | view : 305727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창조경제'를 외치면서 우리나라 경제 해법을 내놓았다.

그 핵심 포인트는
기존의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창의성을
경제구조에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아이디어와 열정이 있지만,
그것을 경제적 역량을 갖도록 추진하고 끌어올리는 데 있어서는
외부의 다양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발상이며,
정경유착의 단순한 경제구조가 취약점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대기업 중심의 편향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한 마디로, 경제구조의 문제점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묘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완성된 현 시점에서
처음의 컨셉과는 많이 다르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으며,
그에 따라서 오히려 우려가 만들어진 상황이다.

그 이유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대기업 기반이라는 것이며,
거기에 참여한 대기업의 상당수가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은
참여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운영의 컨셉 또한 창조경제의 컨셉과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 정부의 임기가 곧 창조경제의 임기가 될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대기업 기반이라는 것은
결국, 참여 대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한 흐름으로 운영될 것이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 중심구조가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창조경제가 새로운 성장기반의 구조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점에서 볼 때,
'자발성'이 본질적 가치라 할 수 있다.
그 어떠한 것도 '본질적 가치'를 외면하고 추진되었을 때는
변질되고 왜곡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문제점을 더 크게 할 수 있다.
현재로 봐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바로 그런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른 비교 사례를 '실리콘밸리'로 들어보겠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만 남단의 산타클라라 계곡 지대에
인텔을 비롯한 미국의 유력한 전자·컴퓨터 관련 산업이 집중된 공업지역이다.
이전에는 양질의 포도주 생산지대였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기반의 기술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펀드가
'자발적 벤처정신'으로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실리콘밸리 안에서는
외부와 다른 규범이나 조항들이 탄생/운영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반독점 문화인데,
'실리콘 밸리'는 협력망을 적극 장려하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갔다.
다음은 박상덕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의 글의 인용이다.
* 출처: http://www.daejeon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2686

"같은 업종의 사장들끼리 레스토랑에서 만나 기술적 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나눴으며
다른 회사 직원들과도 정보를 공유하고,
어제까지 내 회사 직원이 다음날 바로 옆 회사에 취업해도 문제삼지 않았다.
심지어 새로 들어간 회사 주차장이 좁아서
어제까지 다녔던 회사에 차를 둬도 괜찮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교류와 공유,소통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물론, 최근에 이 반독점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서게 되었다.
2014년 3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지방법원 새너제이지원은 '하이테크 피고용인 반독점 집단소송' 재판의 배심원 선정 절차를 오는 5월 27일 개시하기도 했다.
* 참고기사: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4032602010351713002
하지만,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되기까지에는
수십년 자연스럽게 형성된 실리콘밸리의 클러스터(clusters)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오로지 기술과 펀드가 만나는 요람이 되었던 것이다.
박성덕 사장의 말을 덧붙이자면,
"비록 그물망(clusters)에 있던 한 기업이 실패해도
나머지 기업들이 이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실패비용'을 줄이면서 성공"하게 된 것이다.



우리 경제가 '창조경제'가 되었든,
다른 그 무엇이 되었든 어떤 다른 불순물 같은 요인이 들어가서는 안되겠다.
'창조경제'의 가장 큰 단점은
여전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수순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며,
여기에 정치적 압박이든, 시대심리가 되었든,
대기업 중심/기반의 고리로 형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불순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실효성, 지속성 모두 의심스러운 것이다.
아주 가녀린 야생화라도 그것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면,
여지 없이 자기 자태의 꽃을 피우는 것이 자연 생태계이다.
우리 사회에 이 '생태계'라는 담론이 언제나 뿌리를 내리게 될지
안타까움과 소망으로 기대해 본다.

이 시점에서
이 기대를 가정에서 시작해 보면 어떨가 싶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한다, 교육한다, 하지만,
부모 세대의 역할이야말로 생태계를 보존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커나갈 수 있도록만 하는 것이다.
감 나라, 배 나라 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여건만 만련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내가 답답하니 '지켜보는 것'을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러면 '불순물'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이루지 못한 관계맺기의 구조가
사회와 국가의 구조로 이어질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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